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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K 03] 리뷰 : 티로 가릴 수 없는 옥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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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K 03] 리뷰 : 티로 가릴 수 없는 옥빛
  • 유 하람
  • 승인 2018.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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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수를 제압하는 박희준

[랭크5=광주 빛고을체육관, 유하람 기자] 11일 광주 빛고을체육관에서 열린 KTK 03은 화끈한 명승부가 거듭된 끝에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대회의 꽃은 근래에 보기 드문 ‘헝그리 파이팅’이었다. 오프닝부터 연장까지 가는 완전연소 대결이 펼쳐졌으며, 준 메인에서는 챔피언이 도전자의 노가드 난타전을 받아주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반칙을 저지른 장덕준과 루즈했던 여성부 경기 등 옥에 티도 분명 있었으나, 보는 재미가 있던 이벤트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메인이벤트 : 주만기 VS 카를로스 부디아오

“압도적인 힘은 기술을 압도한다”
-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주만기, 2차전은 과연?
평점 : ★★★

밥 샙 등장 당시 격투세계는 더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기술은 힘을 제압한다’는 당연한 통념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밥샙은 압도적인 힘으로 ‘미스터 퍼펙트’라고 불리던 어네스트 후스트만 두 번을 KO시켰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하다)’는 말도 생겼다. 기술 차이를 무시하는 상식 밖 피지컬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테크니컬한 장기전이 많았던 KTK 03에서도 같은 충격을 안긴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브라질 파이트 드래곤 헤비급 챔피언 카를로스 부디아오였다. 부디아오는 스텝과 거리싸움을 무시한 투박한 양훅을 무기로 삼는 선수다. 상대는 주만기, 유연하고 테크니컬한 움직임으로 KTK 헤비급/무제한급 통합 챔피언에 오른 인물이었다. 부디아오는 이날 주만기의 스킬을 힘과 공격성만으로 분쇄하며 초살 승을 거뒀다.

시작과 동시에 부디아오는 강한 라이트 훅으로 주만기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부디아오의 파워에 맥을 못 추던 주만기는 이내 니킥에 다운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펀치에 무너졌다. 두 번째 다운이 나오자 주심은 곧바로 경기를 중단했다. 챔피언 주만기는 1분 여 만에 TKO 당했다.

경기 자체는 화끈했다. 펜싱이 아닌 격투기기에 느낄 수 있는 묵직함을 간만에 느낄 수 있는 초살 경기였다. 순발력과 기교, 포인트 싸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이 역시 격투기의 매력이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KTK 헤비급에서 이 외래종 황소개구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도 된다. 당장 챔피언이 1분 여 만에 무릎 꿇은 마당에 적수가 과연 있을 것인가.

일단 부디아오의 다음 경기는 주만기와의 2차전이 기정사실화됐다. 승자 인터뷰에서 부디아오는 “무조건 1라운드에 끝낸다고 생각했다”며 “다음 경기에는 챔피언십을 원한다”고 어필했다. 이에 주만기는 “내년 5월 타이틀을 걸고 리벤지 매치를 치르자”고 제안했고, 협회측은 곧바로 대결을 성사시켰다. 절치부심한 챔피언이 KTK 헤비급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여담으로 부디아오 세컨 측에는 오는 9월 17일 추정훈과 맞붙는 다닐로 자노리니가 자리했다. HEAT 킥복싱 미들급 2대 챔피언 출신인 자노리니는 최근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전을 준비하고 있다. ‘매의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자노리니는 승리가 확정되자 크게 환호하며 부디아오와 기쁨을 나눴다.

준 메인이벤트 : 박희준 VS 설선수

“도전자보다 배고팠던 챔피언”
- 타이틀전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
평점 : ★★★★

메인과 반대로 준 메인에서는 사생결단의 혈투가 펼쳐졌다. 페더급 챔피언 박희준은 혈투 끝에 페더급 타이틀 1차 방어에 성공했다. “KO보단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겠다”던 예고는 빗나갔지만, 박희준은 영혼을 불태우는 경기로 객석을 열광시켰다. 반면 설선수는 챔피언을 다운시키는 등 선전한 끝에 ‘졌지만 잘 싸웠다’로 첫 타이틀전을 마무리했다.

1라운드 초반부터 쏟아지는 날카로운 로우킥 연타에 설선수는 거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무난히 박희준이 경기를 잡는가 싶은 순간, 1라운드 종료 30초를 남기고 설선수는 양훅을 적중시키며 다운을 따냈다. 박희준은 다운 카운트를 듣는 동안 경기가 종료돼 기사회생했다. 평범할 뻔했던 경기는 이 때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2라운드부터는 설선수가 무작정 들어가 흔들다 박희준이 반격하며 분위기를 뒤집는 흐름의 연속이었다. 피냄새를 맡은 설선수가 ‘너 죽고 나 죽자’ 식 타격전을 걸자 챔피언은 빼지 않고 응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확도가 좋은 박희준이 앞서나갔고, 3라운드부터는 설선수가 뒤집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판정에서는 후반을 주도한 박희준이 웃었다. 세 심판은 모두 박희준에게 38-36으로 판정승을 선언했다. 설선수가 투지를 불태우며 좋은 그림을 만들긴 했지만 챔피언이 기량 자체가 한 수 위였다.

경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챔피언의 도전자보다 굶주린 듯한 파이팅이었다. 박희준은 스피드나 근력이 유달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대신 뛰어난 기본기와 정확성을 바탕으로 침착하게 운영하는 ‘알파고’ 같은 타입이다. 앞서 말했듯 박희준은 실력으로 설선수보다 한참 앞서 있었고, 원한다면 ‘안전빵’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챔피언이기 전에 파이터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다. 계산되지 않은, ‘싸움’을 하는 챔피언을 싫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날 22살의 어린 챔피언은 입식격투기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5경기 : 하운표 VS 모리 고타로

“썩 개운하지만은 않았던 승리”
- 한 라운드만 등장한 ‘펀치 장착한 킥 머신’
평점 : ★★

이번 대회에서 광주 현지인을 제외하고 가장 큰 응원을 받은 선수는 단연 하운표였다. 인천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하운표는 ‘한일전 버프’를 감안해도 유독 큰 환호를 받았다. 태권도 베이스다운 시원시원한 킥, 이번 대회 계체량을 구제한 입담 등 확실히 그는 인기가 있을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날 보여준 퍼포먼스는 기대 이하였다.

계체 인터뷰에서 “킥을 쓰기 아까운 상대”고 하운표는 1라운드 시작부터 로우킥-하이킥 연타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복싱을 장착했다”는 예고만큼은 진심이었다는 듯 이내 고타로의 레프트 훅을 라이트 훅으로 받아치며 다운을 따냈다. 이후에도 경쾌한 킥 연타로 상대를 견제했으며, 고타로의 왼쪽 안면에 날카로운 펀치를 집어넣으며 위협했다.

2라운드에도 랭크5와의 백 스테이지 인터뷰에서 공약으로 걸었던 나래차기로 시작하며 고타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중반 들어 라이트 바디가 주효하자 코너로 몰아 복부만 노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급격한 체력 저하와 더불어 바디 니킥으로 치고 들어오는 고타로의 압박에 애를 먹으며 많은 점수를 빼앗겼다. 특히 펀치 싸움에서는 기본 스탠스부터 무너지는 안타까운 모습까지 보였다.

다행히(?) 판정운이 따라 만장일치로 승리했지만, 만일 여기가 일본이었어도 판정이 이렇게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만했다. 세 심판은 모두 30-27로 하운표 승을 줬는데, 2, 3회전은 고타로가 가져가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라운드였다. 잘 하면 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서른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날렵한 움직임을 유지하는 자기관리는 대단하지만, 그를 따르는 큰 환호성에 부응하려면 무언가 더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4경기 : 추정훈 VS 임재욱

“링 러스트는 허구다”
- 명불허전 추정훈
평점 : ★★★☆

한편 KTK 미들급 랭킹 1위 추정훈은 2년이라는 공백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승리했다. 랭킹 3위의 신인 임재욱은 이 악문 표정이 화면에 잡힐 만큼 악착 같이 싸웠으나 끝내 벽을 넘지 못했다. 추정훈은 2, 3라운드에서 무리하지 않으며 운영한 끝에 최종전에서 하이킥 KO승을 거뒀다. 링러스트에 대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유롭고도 압도적인 승리였다.

경기 초반부터 추정훈은 펀치싸움에서 완벽히 압도했다. 내내 흔들리던 임재욱은 결국 커다란 라이트 훅을 맞고 다운됐다. 1라운드 내내 코너에 몰리던 임재욱은 이후 라운드에서는 로우킥과 니킥에 고전하며 기를 펴지 못했다. 이미 점수를 넉넉히 벌어놓은 추정훈은 오랜만에 서는 링을 충분히 느끼며 시간을 보냈고, 4라운드에는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하이킥으로 마무리했다.

최근 국내 종합격투기 무대에서는 전어진·양해준 등 전통적인 강자들이 긴 공백으로 인한 링 러스트로 경기를 그르치며 팬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국내 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실전감각의 중요성을 느끼는 이 때, 추정훈은 ‘나는 다르다’고 말하는 듯했다. 군 복무를 끝내고 돌아와서도 좋은 경기력으로 승전보를 올린 강경호·정찬성처럼 그는 건재했다.

이로서 추정훈은 2년 만의 복귀전에서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통산 25승 4패로 링에 돌아온 추정훈, 당분간 그를 막을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3경기 : 선현범 VS 장덕준

“최악의 경기, 최선의 마무리”
- 경기를 구원한 진시준 관장
평점 : ☆

KTK 03 최고의 경기를 꼽을 때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기는 고민할 여지가 없다. 선현범 대 장덕준은 대회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나쁜 양상으로 흘러갔다. 장덕준은 글러브 터치 직후 공격, 로블로로 인한 경기 중단 선언 직후 추가타, 버팅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2라운드에는 기어이 고의 스탬핑을 터뜨렸다. 비매너와 반칙으로 얼룩진 경기를 살린 건 다름 아닌 장덕준 측 코너맨 진시준 관장의 결단이었다.

경기는 충분히 장덕준이 앞서나가고 있었다. 킥을 아끼며 발을 붙인 채 던지는 체중 잔뜩 실린 펀치에 선현범은 계속 애를 먹었다. 카운터로 맞받아치며 대응했으나 장덕준의 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라운드 중반부터는 안면을 연달아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문제는 선현범의 거센 저항에 장덕준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전부터 신경질적인 비매너 행동을 보이던 장덕준은 2라운드에 선현범이 킥을 차고 미끄러지자 그의 목을 스탬핑으로 밟고 지나갔다.

경기장 분위기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선현범 코너 측에서는 분통을 터뜨렸고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다행히도 사태 수습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주최측은 선현범 세컨드들을 진정시켰으며, 판정단은 즉시 1점 감점 선언 후 비디오 판독으로 고의성이 확인되자 2점 감점으로 가중처벌했다. 경기 재개 후 선현범이 KO 직전에 몰리자 장덕준 코너 측은 타월을 투척해 기권을 선언했다.

유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포기하는 결단으로 선현범 코너 측도 화를 가라앉혔으며, 장덕준도 추후 별도 징계가 떨어지기 전에 자체적으로 패널티를 안게 됐다. 장덕준 소속 체육관 관장 진시준은 경기 후 랭크5와의 인터뷰에서 “스탬핑 후 언제 기권할지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며 곧바로 책임지려 했던 의지를 밝혔다. 또한 “충분히 장덕준을 자숙시키겠다”고 전했으며, 대회가 끝나고도 상대팀과 선수, 주최측과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과했다.

분명 장덕준의 반칙은 경기 수준을 떠나 대회에서 나와선 안 될, 대회 자체에 타격을 주는 행위였다. 하지만 주최측과 소속팀은 돌발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상황을 종결시켰다. 위험한 상황을 잘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KTK의 대응능력을 확인했다는 훈훈한 평가로 끝내도 될 듯하다.

2경기 : 신찬호 VS 안찬주

“KTK 03만 아니었으면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 잘 싸우고 보니 앞뒤로 명경기
평점 : ★★★

대회가 워낙 시끌벅적했던 탓에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대진도 있었다. 슈퍼웰터급 5위 신찬호와 4위 안찬주는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스플릿 판정까지 끌고 갔다. 강렬한 오프닝과 메인·준메인에 묻히긴 했지만 두 선수 역시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박수를 받았다. 한 끝 차이로 승리한 신찬호는 더욱이나 마음 놓고 승부의 여운을 즐겼다.

신찬호와 안찬주는 이전까지 단 한 번만 패배했을 만큼 깔끔한 전적을 자랑했다. ‘1패 더비’답게 경기는 팽팽했다. 1라운드부터 두 선수는 로우킥이 교차하는 장면이 나올 만큼 화려한 킥 공방을 펼쳤고, 킥 교환에서 링 중앙 펀치 교환으로 전환될 때 신찬호가 연타를 적중시키며 기회를 잡았다. 중간 과도한 클린치로 서로 감점을 받고 신찬호가 슬립다운되는 일도 있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난 쪽은 안찬주였다. 신찬호는 체력 저하로 집중력을 잃으며 뻔히 보이는 주먹, 통칭 텔레폰 펀치를 던졌다. 안찬주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바로바로 카운터로 돌려줬다. 2라운드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3라운드엔 안찬주가 프론트킥으로 밀고 때리는 콤비네이션으로 재미를 보며 승기를 잡았다.

팽팽한 승부로 판정단은 의견이 갈렸다. 1심은 29-28로 안찬주 손을 들어줬으며, 다른 두 심판은 각각 29-28/30-28로 신찬호 편에 섰다. 결국 신찬호는 2-1 판정으로 통산 11승을 챙기며 1패 기록을 이어나갔다. 반면 안찬주는 11승 2패가 됐다. 하지만 관객은 양 선수에게 모두 환호를 보냈다. 둘 다 이길 수는 없지만 둘 다 박수 받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1경기 : 김현서 VS 신유진

“경기력으로 옥에 티”
- 보여주지도 못하고 지친 두 선수
평점 : ★☆

퀄리티가 탄탄했던 이번 대회에도 경기력이 옥에 티였던 대진은 있었다. 여성 웰터급 4위 김현서와 6위 신유진은 제대로 뭔가 보여주지도 못한 채 지쳐버렸다. 김현서와 함께 등장한 래퍼가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1라운드엔 장신 선수 간 대결답게 시원시원한 공방도 있었으나, 2라운드부터는 서로 호흡이 망가지며 경기가 루즈해졌다.

경기 중후반은 신유진이 밀고 김현서가 반격하는 단순한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더 많이 팔과 다리를 뻗었던 김현서가 판정승을 가져갔지만 인상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승자 김현서를 위한 변은 가능하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많은 관중 앞에서, 그것도 가족과 친구들도 잔뜩 있는 홈에서 부담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프로라면 그게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다. 여러 모로 발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오프닝매치 : 김대혁 VS 류민용

“대회의 격을 올린 경기”
- 연장전까지 지루할 틈이 없는 명승부
평점 : ★★★★☆

대중음악 앨범을 듣다보면 보너스트랙이 명곡인 경우가 가끔 있다. 일례로 리아나(Rihanna) 정규 3집 <Good Girl Gone Bad>의 보너스트랙 ‘Take A Bow’는 작품 대표곡 격인 ‘Umbrella'를 제치고 앨범 최고의 곡을 꼽히곤 한다. KTK 03도 비슷한 그림이었다. 대회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경기는 챔피언이 등판한 메인과 준 메인이겠지만, 가장 화끈했던 경기는 단연 메인카드 넘버링도 받지 못했던 김대혁 대 류민용이었다.

화끈한 경기가 이어졌던 KTK 03에서도 오프닝 매치는 군계일학이었다. KTK 페더급 랭킹 6위 김대혁과 7위 류민용은 협회장 취임식 축하 경기라는 타이틀을 무색케 할 만큼 맹렬한 난타전을 펼쳤다. 류민용은 1라운드 초반부터 하이킥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지며 큰 위기를 겪었으나, 공격적인 운영으로 점수를 뒤집어냈다.

류민용이 넉다운 데미지를 극복하고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자 관중석에서는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3라운드 후반에는 류민용이 양훅과 로우킥으로 한참을 몰아붙였고, 김대혁은 뒷걸음질 치다 링줄에 등을 대고 짧게 그로기가 오는 장면도 여러 차례 연출됐다. 무승부 판정으로 연장전에 들어가자 류민용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경기 재개 후 크게 포옹하고 시작한 두 선수는 연장전에서도 불꽃 튀기는 승부를 벌였다. 류민용의 돌려 던지는 동작에 서로 나동그라질 정도로 지쳐있었지만 두 선수는 정신력으로 승부했다. 객석은 ‘류민용’을 다시 연호했고, 응원에 힘입어 류민용은 이전 라운드에서 재미를 본 양훅과 뒷발 로우킥 이지선다를 계속 수행했다. 마지막 10초 동안에는 두 선수가 아예 가드를 포기하고 난타전을 벌였다.

두 번째 판정에서는 승부가 명확히 갈렸다. 판정단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한 류민용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을 선언했다. KO 직전에서 기사회생해 대역전극을 쓴 류민용은 11승 1패를 기록, 타이틀을 향해 한 발 더 내딛었다. 승리와 환호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순간이었다.

총평

“티로 가릴 수 없는 옥빛”
평점 : ★★★★

KTK 광주 대회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각 체육관 사람들은 물론, 내빈과 일반 관중까지 대회를 끝까지 관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장 분위기는 설명이 가능하다. 선수들은 관심에 걸맞는 화끈한 경기로 보답했다. 근래에, 특히 한국 격투기 시장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장면이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KTK 03이 흠이 없는 대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회 내용에서도 진행에서도, 그리고 관중과의 호흡에서도 충분히 A급이었던 이벤트였다. KTK 03은 오랜만에 만족하고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그런 대회였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KTK 03 in 광주 – 3개국 국가대항전 및 한국 2체급 챔피언대회
– 8월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빛고을체육관

[90Kg] 주만기(한국) VS 카를로스 부디아오(브라질)
– 카를로스 부디아오 1라운드 TKO승(펀치)
[60Kg KTK 페더급 1차 방어전] 박희준(광주MBS짐) VS 설선수(안산투혼짐)
– 박희준 4라운드 종료 판정승(3-0)
[75Kg] 하운표(한국) VS 모리 고타로(일본)
– 하운표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75Kg KTK 미들급 타이틀전] 추정훈(JYGYM/그릿5) VS 임재욱(라온)
– 추정훈 4라운드 KO승(하이킥)
[64Kg] 선현범(화순피닉스짐) VS 장덕준(싸이코핏불스)
– 선현범 2라운드 TKO승(기권)
[70Kg] 신찬호(내수무에타이) VS 안찬주(대무팀카이져)
– 신찬호 3라운드 종료 판정승(2-1)
[여성 60Kg] 김현서(광주MBS짐) VS 신유진(클라우스멀티짐)
– 김현서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오프닝 60kg] 김대혁(광주MBS짐) VS 류민용(광주 피닉스짐)
– 류민용 4라운드 종료 판정승(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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