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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주짓수 세계’에서 자신의 ‘제국’을 개척한 사람들 ③ 존 다나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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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주짓수 세계’에서 자신의 ‘제국’을 개척한 사람들 ③ 존 다나허
  • 정성훈
  • 승인 2019.03.26 0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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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다나허 © 헨조 그레이시 주짓수 홈페이지

[랭크5=정성훈 칼럼니스트] 흔히 한국 주짓수 체육관에서 관원을 지도하는 사람을 '관장님'이라고 부른다. 경우에 따라 '사범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저 두 단어로 지도자를 호칭한다. 학교에서는 우리를 지도하시는 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가 만일 오늘 저녁 체육관에 간다고 생각하고 관장님 대신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고 생각해보면 썩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존 다나허(헨조 그레이시 주짓수)는 특이하게도 주짓수계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헨조 그레이시에게 검은 띠를 받은 존 다나허는 사실 모던 주짓수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에 눈길을 끈 특이한 케이스이다. 나긋나긋한 ASMR(심리적 안정감, 쾌감을 주는 소리 - 편집자 주)에 가까운 목소리로 본인의 연구와 이론에 기초하여 철저하게 주짓수의 기술들을 시스템화하고 체계화하여 제자들에게 투영시키는 그는, 상대를 무력하게 만든 후 서브미션으로 제압하는 주짓수를 지도해왔다.

다나허의 주짓수가 처음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에디 브라보 인비테이셔널 (EBI)의 서브미션 온리 룰 경기에서였다. EBI는 10분 제한 시간으로 점수 없이 무조건 서브미션을 위한 경기를 하며 경기 시간 이후에는 오버타임 룰을 적용해 스파이더웹(암바) 자세나 백 테이크 자세에서 더 빨리 탈출 혹은 더 빨리 서브미션 경기를 건 사람이 승리하는 독특한 룰의 경기이다. 일종의 서브미션 승부차기인 셈이다.

에디 브라보 인비테이셔널 EBI 엠블럼

다나허의 제자 중 '데스 스쿼드'로 불리는 게리 토논(원 챔피언십 활동), 에디 커밍스 (현재는 미야오 형제의 유니티로 이적)는 다나허의 주짓수 시스템을 앞세워 압도적인 기량으로 펼쳤고 비교적 쉽게 띠 승급을 했다.

두 선수는 이미 ADCC 참가 경험이 있었고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지만 더 독특한 케이스는 고든 라이언이다. 고든 라이언은 원래 에디 커밍스의 부상으로 인해 보궐 선수로 EBI 앱솔루트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당시 77KG급이었던 고든 라이언은 준결승에서 ADCC 우승자인 유리 시모에를, 결승에서 루스탐 치셉을 잡고 우승했다. 당시 고든 라이언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토너먼트를 기점으로 고든 라이언은 EBI에서 총 세 차례 우승을 거뒀고 ADCC에서도 체급 우승을 차지하며 현역 노기 최강의 선수로 군림하게 된다.

고든 라이언의 동생 니키 라이언마저 17살의 나이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ADCC 미국 예선에서 전 경기 서브미션으로 우승했고, 다나허 사단의 2군 정도의 느낌이었던 존 칼레스타인도 EBI 챔피언에 올랐다.

고든 라이언 © 고든 라이언 인스타그램

이들의 게임을 보면, 존 다나허 선생이 지도하는 주짓수가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다.

첫째, 본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매우 강하다. 어떤 상대를 만나던지 본인이 잘하는 영역으로 상대 선수를 끌어들여 무력화한다. 가장 좋은 경기의 예로 ADCC에서 싸운 사이보그 전을 들 수 있다. 사이보그는 이미 ADCC 무제한급 챔피언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괴물이지만, 고든 라이언의 더블 트러블에 빨려 들어가 혼란스러운 표정 속에서 힐훅에 체념의 탭을 치고 말았다. 다나허는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표현하기를 "이미 고든이 다리를 감았을 때,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둘째, 본인의 영역에 한 번 끌어들이면 서브미션으로 가는 능력이 굉장히 우수하다. 특히 백 포지션을 점유하면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끝내는 확률이 매우 높다. 재미있는 점은 포지션을 유리하게 잡는다고 해서 바로 서브미션으로 향하지 않고 야금야금 서브미션으로 향해간다는 점이다. 마치, 이 자세를 잡으면 이미 서브미션이라고 말하고 있는 느낌이다.

셋째, 서브미션에 대한 방어와 포지션 탈출기가 매우 좋다. EBI에서 다나허의 제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탈출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특히 게리 토논은 ADCC 베이징에서 힉슨 그레이시의 아들 크론 그레이시의 암바를 완벽하게 팔이 펴진 상태로 탈출하는데 성공하며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을 만들었다. 또한 고든 라이언은 크레익 존스에게 EBI에서 팔이 부러질듯한 아슬아슬함 속에 암바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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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 가지 사항을 다시 되짚어보아도, 다나허의 주짓수는 '서브미션 ONLY' 경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노기 주짓수에서 제자들이 엄청난 승률을 자랑하며 네임드 선수들을 서브미션으로 잡아나가기 시작하자 자연히 전 세계 주짓수 수련자들 특히 노기 주짓수 및 종합격투기 수련자들의 관심이 다나허와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로 쏠리기 시작했다.

UFC 전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역시 다나허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동안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에서 수련을 했고, 게리 토논과 수차례 겨룬 바 있는 AJ 아가잠, 고든 라이언의 라이벌이자 '다나허 사단'과는 다른 본인만의 '힐훅 게임'을 하는 호주의 크레익 존스도 '적과의 동침'을 위해 뉴욕으로 왔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든 본인에게 가르침을 청해 오면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모습. 일반 수련생이든 선수든 자신의 주짓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가르침은 심지어 제자들의 라이벌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찾아오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다나허의 강좌를 접하는 사람들조차, 화면 속의 가르침에 사로잡혀 직접 뉴욕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존 다나허를 비롯해 그의 사단인 게리 토논, 고든 라이언, 닉 라이언이 싱가포르 이볼브MMA에서 5일동안 캠프를 연다. ©이볼브MMA 페이스북 페이지

다나허의 가르침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계속되고 있다. 현재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어떤 이는 몇 달 월급을 모아서 싱가포르로 7일 동안 진행되는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현재 가장 방문하여 운동하고 싶은 체육관은 뉴욕의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다.

온라인으로는 'Enter the system'이란 시리즈를 낸 바 있다. 레그락/헤드락/트라이앵글/백 어택 등으로 나누어져 출간된 이 시스템은, 세분화하고 체계화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존 다나허로부터 직접 검은 띠를 받은 나건(건 주짓수) 관장이 그의 주짓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관원들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대회에 참여하며 입상하고 있다.

존 다나허에게 검은 띠를 받은 건 주짓수의 나건 관장

현재 존 다나허는 엉덩이, 무릎 수술로 인해 정상적인 운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가르침은 끝나지 않았다. 존 다나허는 주짓수에 대한 학구열이 꺼지지 않는 사람이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시스템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며 제자들을 지도할 것이다.

뉴욕 헨조 그레이시의 지하 체육관에서 또 어떠한 시스템으로 무장한 다나허의 제자가 다시 한번 노기 주짓수 시합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지 기대해본다.

pivada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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