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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약물을 대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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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약물을 대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 성우창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31 0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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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소리를 내어본 적이 있는가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스포츠를 ‘운동 경기’와 동의어로 취급하고 있으며, 운동이란 다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이라 정의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스포츠는 종목을 불문하고 신체능력의 우열을 겨루는 행위다. 그리고 선수 스스로 실력을 갈고 닦는 데서부터 대결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부정의 개입없이 정정당당히 겨루는 자세를 우리는 ‘페어플레이 정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 약물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는 땀과 눈물이 아닌 화학의 힘을 빌려 신체능력을 향상하고,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행위가 상기한 페어플레이 정신에 위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게는 약물 부작용에 의한 선수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종합격투기와 같은 격투 종목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더 포함된다. 단순히 승부에 부정이 섞였다는 사실이 전부가 아닌, 도핑으로 향상된 강력한 신체능력이 곧 흉기로 변해 상대의 신체와 생명에 직접적인 위력을 가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손과 발이 칼과 망치로 둔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핑에 사용되는 약물 종류와 개개의 특성, 그 밖에 전문적이면서 자질구레한 요소들에 대해 논하려면 본 칼럼 한 두 편 가지고는 모자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바라볼 주제는 종합격투기의 팬으로서 약물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다.

여기까지 보면 분명 의아해하실 독자가 있을 것으로 안다. 약물이라니, 존재 자체가 절대 악으로 분명한 존재에 대해 팬으로써 비판 외 다른 자세가 있을까? 

정론이다. 아마 대다수의 격투기 팬들이라면 당연히 취하고 있을 자세가 아닌가 싶다. 격투기 선수의 약물 적발 이슈를 다룬 기사나 게시물을 댓글을 보면 ‘약쟁이’라는 조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이 약물에 분노하는 이유는 상단에 적힌 약물의 해악 그대로다. ‘누가 최강인가’라는 종합격투기 종목의 신성한 순수성을 흐리는 행위이며, 파이터들 스스로와 상대의 생명을 갉아먹는 최악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정 반대 극에 존재하는,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입장이 있다. 

이들은 UFC의 USADA(미국도핑방지위원회) 도입 이전으로 대표되는 약물천지의 시대를 동경하며, 비록 순수한 능력은 아닐지라도 보기만 해도 동경하게 되는 강철 같은 근육과 탈인간적 퍼포먼스를 다시 한 번 목격하기를 기대하는 입장이다.

그 주 논지는 다음과 같다. 어차피 종합격투기는 관중들의 관심과 성원이 있어야 하는 쇼 비지니스일 뿐이며, 그런 측면에서 다소간의 약물은 눈감아주고 제일 ‘약 빨 잘 받는’ 스타 파이터의 탄생이 종합격투기의 중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이 입장은 종합격투기의 ‘스포츠성’을 무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거 매니아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의 종합격투기를 그리고 있다. 다분히 쾌락, 성과주의적인 발상에 가깝다. 그들은 때론 약물을 부정하는 측을 위선자라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두 입장은 약물이슈에 반응하는 팬덤의 대표적인 양극단에 불과할 뿐이며, 그 사이에는 여러 주장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약물 부정 20% 약물 긍정 80%’나 ‘약물 부정 60% 약물 긍정 40%’ 등 양 주장의 근거를 어느 정도 수용한 절충적 입장도 있을 것이다.

오늘 필자가 칼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주장이 옳다!’라는 확고한 대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며, 본 필자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종합격투기 팬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고,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이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 진지한 고찰을 하거나 다른 팬들과 솔직한 토론을 나눌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 스스로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몇 개월 전 같이 운동하던 체육관 식구들과 함께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매우 고지식한 성격의 필자는 그 때 까지만 해도 약물에 매우, 무조건적인 비판적 입장이었기에 꽤나 강경한 어조로 거론된 약물 의심선수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못난 형의 성급한 분개를 듣던 어떤 동생은, 꽤나 씁쓸한 어조로 나를 타일렀다.

‘형, 형의 미래와 생계가 시합 한판 한판에 달렸다고 생각하면 무작정 그 사람들을 욕할 수 있겠어?’

평소 영 풀리지 않는 자기 커리어를 놓고 고민하며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친구였기에, 나는 조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해당 선수는 예나 지금이나 약물의 유혹에 굴한 적이 없음을 명예를 위해 밝혀 둔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정년 퇴직까지 몇 십년이고 수입을 유지하며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운동선수, 특히 종합격투기 선수는 다르다. 이 판은 고정된 연봉이 존재하지 않으며, 파이트 머니를 재투자해 자신이 먹고 살아갈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종합격투기 선수 스스로에게 승리 하나하나는 무엇보다 소중한 커리어이다. 

결국 챔피언 타이틀 하나 없이 은퇴한다 하더라도, 어떤 대회에서 우승하고 이만큼의 전적과 명승부, 명장면을 연출했고, 그에 따른 명성을 지녔다면, 자연히 은퇴 후에도 그 이름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헐리우드와 프로레슬링, 예능에서 활약하는 전 격투기 선수들의 면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 전부가 약물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다못해 체육관을 차리더라도 모이는 고객의 숫자에 차이가 있다.

종합격투기에서 강도높은 도핑검사를 실시하는 단체는 사실상 UFC뿐이며, 그 외에는 테스트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유명무실하다. 그런 단체에서 자신이 선수라면, 자기 외에 다른 선수들이 약물을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고 미래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숭고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건 단순히 ‘남들 다 쓰는데 나만 안 쓸 순 없지’라는 무책임한 자세와는 한 차원 다른 이야기다. 약물을 쓰든 안 쓰든, 그 1승에 나와 나의 가족의 한 번뿐인 인생이 달린 문제일 수 있다는 소리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당시의 필자로서는, 스스로도 길었던 백수시절의 아픔이 떠오르며 새삼 선수를 향한 무조건적 비난이 자신의 위선이나 편협함, 이기심은 아니었는지 곱씹게 되었다.

그 다음 일화는 상기의 짤막한 후기에 가깝다. 주변에 격투기 팬이 없어 평소 다른 팬과의 소통에 목마르던 필자는 어떤 메신저 오픈채팅방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마침 약물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약물에 반대하나, 도핑한 선수 스스로는 앞서 깨닫게 된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며, 그걸 생각하면 약물을 저지른 모든 선수들을 일관적으로 비난하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제 딴 에는 조심스럽게 전했다.

개중 온건한 팬들도 있어 어떤 분들은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유독 한 팬만은 오히려 약물을 옹호하는 것이냐며 분개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다툼으로 흘러가지 않고 필자가 한 발 물러서며 화제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약물을 대하는 종합격투기 팬 간의 큰 입장의 간극, 그리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계기나 장이 있었는가 라는 자성을 하게 되는 계기였다.

필자는 여전히 약물 문제에 관해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소중한 경험들을 통해 약물을 비난하더라도 그 선수들 모두를 일관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는 입장과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분들 역시 결국 같은 결론을 내더라도 자신이 갇혀 있는 우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바깥 세상 다른 팬들 과의 소통을 거치고 격투기 판 전체의 이익과 선수들의 입장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얻어낸 결론이라면 더욱 소중한 자기만의 신념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네이트 디아즈가 UFC 244를 앞두고 USADA와 도핑 관련 이슈로 마찰을 일으켰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는 단순 해프닝으로 결론이 났으나 가장 근래에 일어난 약물관련 빅 이슈였던 만큼, 소식을 접한 순간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고 자성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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