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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함서희 파이트머니 횡령 사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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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함서희 파이트머니 횡령 사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의미
  • 성우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8 0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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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모로오카 뿐이랴, 어찌 함서희뿐이랴

[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그 옛날 있었던 일
약 7년 전 있었던 일화다. 한 복싱협회 주관으로 여성 슈퍼페더급 세계 타이틀 매치가 열렸는데, 주인공이었던 선수에게는 파이트머니로 실수령 53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실제 제안된 금액은 1천만 원으로서, 그 안에 체류비 등등 여러 가지 공제 항목이 빠져나간 것을 고려하면 일견 정상적인 지급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면 형태의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선수는 그저 파이트머니를 준다는 구두계약 자체를 감사히 여긴 채 시합에 임했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해당 선수에게 파이트머니 2천만 원이 배당될 예정이었다. 이 대회는 해당 지역 지자체가 수천만 원에 이르는 거액을 지원한 상황이었으며, 분명히 우리 선수에게 배정된 파이트머니 명목으로 2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던 것이다.
 
나머지 1천만 원의 행방은 어디로 갔을까? 참고로 상대방 외국인 선수의 파이트머니 및 체류비용으로 적힌 3천만 원 돈의 금액도 있었으나, 정작 외국인 선수의 체류비용 일체는 어느 은퇴선수의 자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충격이 더해진 바 있다. 이후 해당 협회는 횡령죄 혐의로 고발당해 책임자가 처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9년 12월, 비슷한 일이 대한민국 대표 종합격투기 선수 함서희 선수에게 일어난다.
 
 
지금의 이야기
물론, 위 사례와 같은 파이트머니 떼먹기는 어찌 보면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 복싱이 파이트머니 횡령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폭삭 망한 전적이 있으며, 2000년대 세계 종합격투기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에 격투기 유행을 불러일으킨 PRIDE, K-1 등도 도산하는 과정에서 파이트머니 횡령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 전 CMA 회장 모로오카 히데카츠라는 인물을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처음 이름을 듣게 된 팬들이 많겠지만, 사실 한국 격투기 선수의 해외 진출, 국내 종합격투기계의 기반 형성을 설명하려면 모로오카 회장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함서희 선수를 비롯해 과거 김동현, 최두호, 양동이, 방태현 등 유명인들은 커리어 초기 일본 대회에서 전적을 쌓았으며, 한국에 마땅한 발판이 없던 이들이 일본에서 귀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던 데에는 모로오카 회장의 조력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괜히 함서희 선수가 ‘그간 부모처럼 생각했는데…’라고 충격을 감추지 못한 것이 아니다.
 
바로 미국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러시아 등 극동 지역의 인프라마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파이터들의 해외 진출이란 곧 일본진출을 의미했다. 모로오카 히데카츠란, 곧 한국 격투기 선수가 해외에 진출하고 금전적 성공까지 거둘 마스터키를 쥐고 있었다. 이렇게 진출한 선수들이 해외의 선진 격투기 문화, 훈련 노하우, 대회 시스템 등을 들여와 국내 격투기 발전에 중추작용을 할 수 있었으므로,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현재의 한국 격투기계의 발전상은 모로오카 회장의 존재 없이 거둘 수 없었던 성과인 것이다.
 
모로오카 자신도 한국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볼만한 일이 몇 개 있었다. 그간 있던 한국 파이터들과 일본 대회 간의 끊임없는 연결, 자기가 소유한 단체 CMA의 한국법인 설립, 세월호 참사 당시 성금 전달 등 미덕으로 보일 만한 언행을 하곤 했다. 과거 선수들의 승자 인터뷰 중에도 모로오카 회장이 거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정문홍 로드FC 전 대표가 단체를 설립하기 전 일본 유학 등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는 인터뷰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간 보였던 우호, 약간 아슬아슬 위태위태해 보이는 상호 간의 신뢰로만 이어진 비즈니스 관계는 결국 돈과 권력을 쥔 자의 뒤통수로 끝이 났다.
 
 
함서희
함서희

 

계약서가 없었다
필자가 이번 사태의 발단, 함서희 선수의 폭로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계약서를 보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직접 계약서를 보지 않고, 서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많은 신세를 졌던 모로오카 회장을 신임했다가 우연히 파이트머니 횡령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뉘앙스로 볼 때 계약서가 없이 이루어진 경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런 선수가 한 둘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종합격투기 태동기 돈과 상관없이 출전할 기회만이라도 잡고자 했던 우리 선수들은 모로오카 회장, 혹은 그 이외 프로모터와 접촉할 때마다 각종 불공정 계약에 시달려야만 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불공정 계약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회 물정을 미처 경험하지 못한 채 운동에 집중한 선수들은 ‘감사하게도’ 한 번의 기회를 하사하신 에이전시의 아량에 파이트머니의 정당한 액수를 따지기는커녕, 당연히 요구해야 할 계약서의 검토조차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설령 선수 본인이 사회 물정을 알 만큼 안다고 하더라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되었던 구시대의 악습이, 별다른 시정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현재까지 그대로 내려져 왔음은 자명한 일이다. 오히려 그 악습과 선수 간에는 모종의 뒤틀린 신뢰 관계마저 생겨났다. 그간 크고 작은 파이트머니 관련 분쟁이 있긴 했으나 이번 사건이 특히나 충격을 가져다준 이유는, 한국 격투기계 인사들이 신세를 지고 의지했던 최중요인물의 배신, 이쪽 세계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구시대의 악습이 결국 선수 본인의 목을 조르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대로 바뀌지 않는다면
업계에 뿌리 깊이 박힌 체질을 개선하는 일은 어느 분야나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들춰내고 원인을 발본색원하며, 책임 있는 자를 일벌백계하고자 한다면 결국 이해관계와 인정에 얽힌 사람들의 첨예한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고, SNS와 언론을 통해 서로를 물어뜯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그저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그저 모로오카 히데카츠와 사건의 직접 관계자들만 배제한 채 다시 지금까지 왔던 길 그대로 갈 길을 가는 것을 택할 수도 있다.
 
물론, 그 길은 언뜻 평온하고 순탄할지 모른다.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행인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필자는 그것이 지금도 회생하지 못하는 한국 복싱, 일본 종합격투기라는 선례들의 뒷모습으로 보인다.
 
 
이대로 바뀌고자 한다면
사실 이 모습이 필자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한때 문화예술계에서 여러 이슈를 간접적으로 접해본 탓이다. 당장 2019년에만 해도 유튜버와 MCN 회사 간 불공정 계약 논란이 일어났으며, 그 이전 영화계 및 출판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완전히 해결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쪽 업계에서도 지속적인 자성의 목소리와 관습 변화를 외치는 움직임에 따라 과거와 현저히 다른 계약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초보 작가, 초보 예술가라도 회사 측에 당당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인한 표준계약서가 활발히 보급되고 있다.
 
격투기계도 마찬가지다.

- 정당한 파이트머니의 적극적 조율
- 서면 계약서의 직접 검토
- 불공정 조항 계약 거부
- 계약서의 직접 서명
- 기타 선수들을 위한 법률적 지원 인프라 구성

이제부터라도 링에 오르는 선수들 스스로가 정당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업계를 이끌어가는 선배와 대회 관계자들도 이런 선수들의 모습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정말 작은 부분의 사소한 변화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간 굳어진 악습에 의해 여러 이해관계가 생겨난 이상 절대로 쉽지 않은 체질 개선이다.
 
파이트머니는, 결국 종합격투기의 근간을 떠받치는 존재들인 격투기 선수들, 그들의 당연한 노력의 대가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당연히 이 기본적인 변화가 뒷받침되어야만 앞으로 또 다른 건전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혁을 받아들이냐 마느냐가 어쩌면 어렵게 이루어낸 한국 종합격투기계의 존망이 달린 문제일 수 있다. 필자는 그렇게 믿고 있다.
 
또한 책임 있는 자는 형벌에 처하지는 못할지언정 반성의 기회를 주거나 영원히 업계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모종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피해를 본 이가 어찌 함서희뿐이랴, 어찌 가해자가 모로오카 뿐이랴, 국내 대회 관계자라고 전부 깨끗하리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더욱 자세한 내막, 더 많은 피해를 알고 있는 이가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입을 열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선수들의 가장 기본적인 대우인 파이트머니만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팬들도 계속된 관심과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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