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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혐오발언이 만연한 격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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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창 칼럼] 혐오발언이 만연한 격투계
  • 성우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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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Hate speech.
일본의 대표적인 혐오발언 반대 슬로건. 일본에서는 이미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라는 혐오발언 금지 법안이 2016년부터 시행되었다. 출처=일본 법무성 홈페이지
"헤이트스피치,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혐오발언 반대 슬로건. 일본에서는 이미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라는 혐오발언 금지 법안이 2016년부터 시행되었다.
출처=일본 법무성 홈페이지

[랭크5=성우창 칼럼니스트] 본래 이 칼럼의 제목은 ‘권아솔 선수에게 드리는 편지’가 될 예정이었다. 최근 권아솔 선수가 SNS를 통해 표명한 모종의 ‘입장’에 대해 내 나름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사실관계를 편지 형식으로 바로잡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곧 그런 생각은 접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미 말하고 싶었던 의견들이 댓글로 충분히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스스로의 의견을 토대로 반론을 제시해봐야 또 다른 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꼴이 될 뿐이며, 그런 나 또한 어디까지나 부족한 사람인 이상 또 다른 오류와 논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그가 말한 내용이 격투와는 별 관련이 없는 내용이므로, 반론의 내용 역시 격투라는 분야와 거리가 멀 것이기에 격투 칼럼의 지면을 빌어 그 반론을 나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막 칼럼의 가제를 잡고 첫 글자를 타이핑하기 직전에야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즉시 컨셉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주제에 대해 마냥 함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국 격투계 스타였고,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도덕적 기준에 반하는 언행으로 뭇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기독교 원리주의적 발언 자체를 포함해, 전체 문맥 중 적지 않은 분량이 헤이트스피치, 증오와 혐오발언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권아솔 선수만이 아니라 내 스스로 짧고 가늘게 겪은 한국 격투계라는 세계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는 헤이트스피치를 공공연히 발언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에 한 번쯤 짚어볼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혐오발언
헤이트스피치는 201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촌의 여러 문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주로 일본에서 벌어지는 혐한 관련 이슈에서 헤이트스피치의 존재를 알았을 텐데. 정확한 의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연령, 장애, 질병 등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특성에 대해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발언이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헤이트스피치라는 말도 쓰이지만 증오언설, 혐오발언으로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한국 사회에도 인터넷, 현실 할 것 없이 각종 혐오발언이 넘쳐흐르고 있다. 듣는 이가 느낄 수 있는 불쾌함을 상정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내뱉는데, 여기에 대한 반박이나 정정, 혹은 자제 요청을 하는 순간 그 사람 역시 증오언설, 혐오발언의 대상으로 묶이게 된다.

혐오발언의 주제 역시 주로 정부나, 특정 지역이나 국가, 민족에 대한 이야기다. 웃기는 것은, 일례로 한국이나 한국 사람을 향한 혐한 발언, 인종차별행위들에는 공분하면서, 정작 다른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은 사회에 만연하다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수련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앞서 말했듯 본 칼럼은 격투 칼럼이므로 격투계에 한정해서 말해보자. 그나마 권아솔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이런 종류의 발언에 자제하는 듯하지만, 각종 격투기 팬 커뮤니티며, 생활체육으로서 격투기를 즐기는 몇몇 관원, 혹은 그 관장이 거리낌 없이 증오발언을 SNS에 표현하길 거리끼지 않고 있다.

혹자는 이 혐오발언을 ‘정당한 개인의 의견 표명으로 존중해달라’하는 모양이지만, 정확한 팩트에 기반하고 보다 나은 미래로의 개선을 바라는 건전한 지적과 혐오와 증오,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해당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향해 무차별적 비난과 공격을 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한테 해라도 되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도장, 체육관을 다니며 많은 다른 관원들과 관계를 쌓는다. 특히 격투기를 가르치는 체육관은 종목을 불문하고 특성상 타 종목에 비해 다른 구성원들과 유달리 높은 신뢰 관계를 쌓는다고 생각한다. 격투란 서로에게 갖가지 기술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 상호 간의 깊은 신뢰가 없다면 서로 기술을 겨루고 실력을 향상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면데면한 다른 사람 간에 대화에서도 밑도 끝도 없는 비속어 섞인 편향성 발언이 나온다면 곤란할진대, 취미인 수련, 운동으로 맺은 친한 인간관계에서 거리낌 없는 혐오발언이 나온다면 어떨까, 물론 의견이 맞아 거기에 동조해 같이 혐오발언을 행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혹은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혐오발언이 ‘정상적인 의견 표명’과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가 바로 타인에게 주는 거리감이다. 건전한 논리에 의한 매너를 갖춘 표현의 의견표명이라면 거기에 반대 입장을 정중히 내놓거나, 그 사람의 입장을 존중하며 함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완전한 오류가 아닌 개인적 입장에 불과하다면 굳이 반박할 필요 없이 존중해도 되고, 후일 여러 차례 그의 입장이 섞인 발언을 듣더라도 그다지 불쾌감이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선을 넘거나 완전한 오류가 있어 반박 발언을 하더라도 화자가 이를 상식선에서 받아들이리라는 신뢰가 기저에 깔리기도 한다.

그러나 혐오발언인 경우 사실상 회피와 관계단절 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름의 반론을 제시해봤자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리라는 신뢰조차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혐오대상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그들과 같은 그룹으로 매도당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함구하고 무시하고 싶어도, 앞으로도 점점 불쾌한 표현이 섞인 혐오발언을 마주한다면 언젠가 그 화자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설령 혐오발언자로서 언제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스스로는 생각할지라도 그러한 당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전혀 그렇지 않은, 그러한 거리감을 혐오발언으로서 이미 줘버렸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하루의 즐거운 이벤트인 체육관, 그 체육관 식구들과의 대화에서 혐오발언으로 인해 자리가 불편해지고, 정도가 심해져 그 혐오발언자와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어진다면 그것은 명백한 혐오발언이 남들에 가하는 피해다.

혐오발언은 필연적으로 발언자의 품위를 저하하고, 인성을 의심하게 하며, 온전한 신뢰를 줄 수 없게 만든다. 보통 혐오발언자들은 그저 단순히 표현이 센 것뿐이라던가, 사석이라 장난식으로 그런 거라던가, 어차피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며 자신을 변호해 타인을 ‘씹선비’라 매도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명백히 잘못된 언동을 한 이는 남고 건전하게 운동을 즐기던 이가 체육관을 그만둬야 한다면 그것은 부조리가 아니겠는가.

격투기 팬도 마찬가지다. 커뮤니티 안 또한 작은 사회라는 점에서 상기한 논리가 적용된다. 또한 아직도 격투 종목은 ‘야만적이고 거칠며 무식한 운동’이라는 선입견을 대외에 가지고 있는데, 누구보다 앞서서 이러한 인식을 개선해 가야 할 우리가 그러지 못하고 비논리적 혐오에 편승한다면 또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만일 스스로가 혐오발언자라면, 그러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자각했다면, 혹은 그런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더라면, 선택지는 둘이다. 자신의 언행이 옳은 것이라 믿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삶을 살던가, 지금부터라도 더욱 나은 사람이 되길 지향하며 실제로 존경과 존중을 얻는 선수, 관장, 관원이 될 것인가.

마치며, 고백, 반성.
당초 칼럼 제목이 ‘권아솔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뀐 이유는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다. 이것은 사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내 주변 지인들에게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은 적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기색에도 (술김이라곤 하지만) 거침없이 언행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잃은 인맥도 꽤 된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아쉽고 죄송한 감정이 든다.

또한 내 주변 체육관 동료, 지인들이 혐오발언을 할 때도 나는 용기 있게 그것에 대한 자제를 요구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입장이 일부 나와 의견이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발언을 듣자마자 극도의 불쾌함을 느꼈는데, 나는 어렵게 쌓은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그저 무응답,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생판 타인인, 준공인인 선수라고 해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앞으로도 내 주변의 혐오발언자들에 직접 그만해달라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지만, 적어도 이런 지면을 빌어 간접적으로나마 호소하고 싶다. 여러분들의 친한 지인이나 그 지인의 가까운 사람이 혐오발언의 대상일 수 있고, 그로써 여러분이 아끼는 사람이 남몰래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또한 여러분의 혐오대상에 포함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혐오발언에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그 발언의 표현 자체가 충분히 불쾌할 수도 있다.

여러분들은 충분히 조금 더 사려 깊은 생각과 논조로 여러분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더 나은 나 자신, 더 나은 우리 사회, 더 나은 우리나라에 그편이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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