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챔프' 최영 "더 몰락하려면 다다음 스테이지까지 올라가야…"
사진 제공 ⓒMOOZINE.NET 최우석 편집장
최영은 11일 일본 오사카 아베노 구민회관에서 열린 '딥 케이지 임팩트 2015 오사카 대회(DEEP CAGE IMPACT 2015 In OSAKA)'에서 챔피언 나카니시 요시유키(30·일본)를 3-2 판정으로 제압하고, 꿈에도 그리던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종합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처음 차지하는 벨트였다. 하지만 그는 "기쁨보다 안도감 더 컸다"고 말했다. "격투기 시작한 지 12년이 됐는데, 이번에 실패하면 이제까지 해온 것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최영은 더 몰락한 늙은이가 되기 위해 다다음 스테이지까지 치고 올라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몰락하려면, 내가 생각한 다음 다음 스테이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떨어져야 몰락이다. 더 올라가야 몰락한 노인이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아래는 전화 인터뷰 전문.
- 프로 데뷔 12년 만에 벨트를 차지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 벨트를 땄다는 기쁨보다 안도감 더 컸다. 격투기 시작한 지 12년이 됐는데, 이번에 실패하면 이제까지 해온 것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나이니까. 물론 신체적인 면에선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패하면 '과연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계속 생각했다. 그래서 승리하고 나니 다행이라는 마음뿐이다. 더 싸울 수 있으니까.
- 벨트를 집에 가지고 왔을 텐데, 벨트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은?
▲ 감격스럽다는 느낌은 아니다. 왜냐면 목표가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여기서 만족해 버리면,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억지라라도 '만족스럽지 않아'라고 되뇌인다. 목표로 가기 위한 통과점일 뿐이다.
- 그 목표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 한국의 여러 파이터들은 UFC 진출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내 목표는 꼭 UFC가 아니다. 수천 만원의 파이트머니를 주는 큰 프로모션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돈이 꼭 중요한 건 아닌데, 파이트머니는 내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프로 파이터의 가격표 같은 것이다.
- 최근 일본의 라이징(Rizin)이라는 큰 단체가 탄생했다. 분명 높은 파이트머니를 줄 만한 큰 단체인 것 같다.
▲ 딥 챔피언이 됐으니 가능성이 제로는 아닐 것이다.
- 로드FC도 챔피언급 선수들에게 경기당 3000만원 이상을 보장하고 있다.
▲ 그런 좋은 대우라면 로드FC 진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나카니시 요시유키와 접전을 펼쳤고 판정도 3-2였다. 국내에 동영상이 소개되지 않았다. 내용을 알려 달라.
▲ 솔직히 너무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경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라운드에 펀치 정타를 몇 차례 넣었다. 마지막에는 등으로 돌아서 선 채로 백포지션을 잡았고 스플렉스를 하는 상황에서 1라운드 버저가 울렸다. 2라운드는 기억이 거의 안 난다. 잽을 몇 번 맞았던 기억이 있다. 3라운드는 오른손 롱 훅을 맞췄다. 기억은 그것뿐이다. 하하하. 나카니시가 3라운드 내내 테이크다운을 3~4차례 시도했는데 넘어가긴 했지만 바로 일어나서 포인트를 빼앗기지 않았다. 경기 영상을 봐야 정확히 어떻게 싸웠는지 알 것 같다.
- 과거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땐 타격이 없는 반쪽 그래플러였다. 그런데 최근엔 KO승 비율도 늘고 타격으로 경기를 이끌어 간다.
▲ 솔직히 반쪽짜리 선수였다. 타격을 거의 못했다. 아마 아실 것이다. 타격의 필요성을 느끼고 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종합격투기가 재밌고 어려운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타격에 집중하다 보니 그래플링 훈련을 거의 안 하게 됐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하지 않게 됐고 타격 비중이 늘었다. 그랬더니 '이상한 스트라이커', '반쪽 스트라이커'가 됐다. 하하하. 다시 레슬링과 주짓수 훈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 다친 곳은 많이 없는가?
▲ 인사이드 로킥을 많이 차서 오른쪽 발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부었다. 금세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통화 중인 지금도 얼음 찜질을 하고 있다.
- 로드FC 후쿠다 리키와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화제가 됐다. 이 대결 구도에 관심이 높다. 후쿠다와 싸운다면 몇 대 몇으로 보는가?
▲ 챔피언이 돼 자신감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후쿠다 리키는 내가 인정하는 실력자다. 5대 5라고 본다. 서로 장단점이 있으니까. 지금은 같은 위치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만날 때까지 누가 더 성장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그 사이 분명히 위기도 몇 차례 있었을 것 같다.
▲ 3년 전 무릎 반월판 연골에 큰 부상을 입었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은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지로 참아냈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투지로 그냥 버텼고 지금은 통증 없이 완치됐다. 투지라고 밖에는...
-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 근거 없는 나에 대한 믿음이랄까? 아직 더 할 수 있다, 난 여기서 끝날 선수가 아니다라고 믿었다. 그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아직 그 마음은 그대로다. 난 여기서 끝날 사람이 아니다.
- 한국 동기들도 최영 선수의 챔피언 등극 소식을 상당히 기뻐했다. 그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 운동을 같이 시작했던 나의 동기들, 친구들이 내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을 알고 기뻐해 주고 있다는 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이 전해져 내겐 큰 힘이 된다. 아직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그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
- 팬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한다.
▲ 예전부터 최영이라는 선수를 지켜봐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는 팬들은 부모님의 마음으로 날 응원하고 있다고 느낀다. 솔직히 난 나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켠에 팬들을 위한 경기를 펼쳐야 겠다는 마음이 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 예전에 최영 선수는 나이가 들어 포장마차에서 홀로 소주를 먹는 몰락한 늙은이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면 몰락한 것이 아니지 않나?
▲ 하하하. 그렇다. 몰락하려면, 내가 생각한 다음 다음 스테이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떨어져야 몰락이다. 더 올라가야 몰락한 노인이 될 수 있다. 하하하.
- 혹시 한국에 올 계획은?
▲ 이번 달은 힘들고, 다음 달에 한국에 갈 예정이다. 챔피언이 됐으니 여러 지인들에게 인사를 드릴 것이다.
이교덕 기자 doc2ky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