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파이브=이교덕 기자
방재혁(26, 코리안탑팀·㈜성안세이브)은 '매콤주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펀치로 상대 얼굴을 알싸하고 얼얼하게 만들어서다.
영어로는 '스파이시 펀치(Spicy Punch)'다. '코리안~'으로 시작하는 여러 다른 한국 선수들의 별명에 비하면 훨씬 개성 있다.
매콤한 주먹을 상대에게 선사하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종합격투기(MMA)는 마치 인생 같다. 예상대로, 계획대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살을 내줄 각오가 있어야 뼈를 취할 수 있는 동네인데, 때로는 상대가 내 뼈를 싹 발라 간다. 매콤한 맛을 안기려다가, 상대가 준 얼큰한 맛에 눈물 콧물 다 뺄 때도 있다.
방재혁은 2016년 프로로 데뷔해 쉬지 않고 싸웠다. 특히 최근 3년 동안 연 평균 3경기 이상 뛰었다. 벌써 20전을 넘겼으니, 9년 차 프로 파이터치고는 진도가 빠른 편이다.
계속 우상향해 왔다면 좋았겠지만, 방재혁은 순탄치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왔다. 전적 12승 9패로, 승률은 57%를 조금 넘기고 있다.
5연승도 해 봤고, 3연패도 해 봤다. 신맛 짠맛 매운맛 다 맛봤다.
중요한 경기마다 미끄러졌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2022년 8월 27일 더블지FC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박찬수에게 판정패했다.
올해 2월 16일 일본 글래디에이터에서 가진 카와나 마츠토와 2차전에선 1라운드 승기를 잡고도 체력이 방전돼 역전패했다. 결국 페더급 타이틀 1차 방어에 실패했다.
방재혁에게 타이틀을 빼앗아 간 카와나는 '로드 투 UFC*(ROAD TO UFC)'에 나섰고 8강전에서 송영재를 꺾어 준결승에 진출했다. 카와나의 자리가 방재혁 차지가 될 수 있었는데…. 씁쓸하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방재혁은 그저 웃을 뿐. 다시 일어서 뚜벅뚜벅 걸어갈 준비를 마쳤다. 이 정도 매운맛은 익숙하다.
방재혁은 오는 12일 일본 도쿄 <글래디에이터 챌린저 시리즈(GLADIATOR CHALLENGER SERIES) 02>에서 5승 2패 이시다 타쿠호(일본)와 대결한다.
이 경기는 타이틀 도전권이 걸린 페더급 토너먼트의 8강전이다. 이번 토너먼트에는 원챔피언십에서 활약한 마츠시마 고요미(31, 일본) 등 강자들이 참여했다. 다시 뛰어든 가시밭길이다.
방재혁은 "카와나 2차전에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 1라운드에 피니시 할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승리를 놓쳤다"며 "이번에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기회가 오면 피니시로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에 지치진 않는지 묻는 질문에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전적은 남들에 비해서 예쁘게 올라가진 않았지만 강자들과 계속 비등비등하게 싸우면서 경기력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방재혁은 전적 관리로 연승하는 것보다, 강자를 때려잡고 이름값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이번 토너먼트에서 우승 후보 마츠시마 고요미와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돌파하겠다'며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전적은 신경 안 쓴다. 강한 선수들과 싸워서 이겨 보도록 하겠다. 마츠시마 고요미와도 만나고 싶다."
매콤하다 못해 얼큰한 인생, 때로는 쓰디쓰다. 단짠단짠의 반복이다. 그래도 방재혁은 지치지 않고 반복 훈련을 통해 '매콤주먹'에 캡사이신(capsaicin)을 계속 뿌리고 있다.
끝에는 달콤하고 짜릿한 기쁨이 있다고 믿고 있다.
■ 일본 글래디에이터는?
일본 글래디에이터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합격투기 대회다. 오사카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2004년 한국에서 첫 대회를 시작했다는 점이 재밌다. 6월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앤더슨 실바·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파울로 필리오·제레미 혼·댄 세번·미노와 이쿠히사(미노와맨) 등 세계적인 파이터들이 당시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쳤다.
현재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넘버 대회가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해엔 챌린저 시리즈(CS)를 출범해 도쿄에서도 방송용 대회를 열고 있다. 이번이 그 두 번째 CS 대회다.
글래디에이터 경기는 유튜브 채널 'ザ・ワンTV (https://www.youtube.com/watch?v=5Ahbq6E1w_M)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다.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