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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Fight Night 139] 리뷰 : 이게 2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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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Fight Night 139] 리뷰 : 이게 25주년?
  • 유 하람
  • 승인 2018.11.13 0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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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vs 야이르 로드리게즈

[랭크5=유하람 기자] 11일 미국 덴버 펩시 센터에서 열린 UFC Fight Night 139는 'UFC 창립 25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감성으로 악명높은 UFC가 이번만큼은 케이지 중앙에 박힌 로고부터 선수 소개란까지 '그때 그 시절' 디자인으로 내보내는 등 외형에도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메인과 준 메인엔 화끈하기로 유명한 정찬성과 도널드 세로니, 마이크 페리가 줄줄이 출전했다. 과연 UFN 139는 이런 주최측의 준비에 걸맞는 결과물이 나왔을까.

메인이벤트 : #10 정찬성 vs 야이르 로드리게즈

"남은 건 버저비터 엘보뿐"
- 상처만 남은 정찬성, 기대 이하였던 로드리게즈
평점 : ★★★

정찬성은 한국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상품성이 높은 선수다. 아니, 북미 무대 한정으로는 역대 아시아인 중 가장 잘 팔리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끈하게 싸우면서도 매 경기 발전하는 재능은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심을 표할만큼 반짝였다. 하지만 그 정찬성이 커리어 정점을 찍은 지도 어느덧 5년. 타이틀전에서 조제 알도에게 패한 뒤 그는 부상과 병역으로 그 5년 동안 단 한 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복귀전에서 데니스 버뮤데즈를 1라운드 KO로 잡아내긴 했지만 '링 러스트는 허구였다'기엔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후 또 한 번 부상으로 공백을 가진 이상 경기력 저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훅 위주의 타격에 날카로운 잽과 스트레이트를 장착한 건 좋았다. 실제로 정찬성은 펀칭스킬만으로 승리 직전까지 갔고, 그 완성도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초반엔 몸이 풀리지 않은 듯 생각만큼 거리를 잡지 못하고 후반엔 강한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흔들어놓고도 연계기가 나오지 않는 등 기나긴 공백으로 인한 실전감각 저하를 숨기지는 못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정찬성이 꾸준히 경기를 뛰는 '진짜 현역'이었다면 진작 경기를 끝낼 수 있었고, 경기 종료 1초 전에 엘보를 맞고 실신하는 일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로드리게즈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왜 UFC에게 보복성 퇴출을 당하기 전 상위 랭커와도 하위 랭커와도 붙지 않으려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의 상징과 같은 화려한 킥 공격은 허공만 몇 번 가를 뿐 상대를 위협하지 못했다. 뛰어난 회복력으로 큰 펀치를 맞으면서도 잘 버티긴 했지만 라운드를 가져올 만한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명승부라도 펼치는 양 몇 번이고 경기 중에 호응을 유도하며 정찬성을 껴안는 모습은 훈훈하다기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딱 하나 보여준 변칙 엘보우로 승부를 한순간 뒤집었으니 필요한 건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TUF 우승 후 UFC가 그를 밀어주며 기대한 그림이 분명 졸전 끝에 간신히 역전하고 탈진해 쓰러지는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정찬성은 안타까웠고, 로드리게즈는 기대 이하였다. 승패가 문제가 아니었다. 만일 두 선수가 온전한 컨디션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용만 놓고 봤을 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경기가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를 받았다는 데서 UFC 25주년 대회가 언더카드까지 모두 실망스러웠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준 메인이벤트 : #12 도널드 세로니 vs 마이크 페리

"클래스는 영원하다"
- 세로니 옥타곤 통산 21승 달성!
평점 : ★★★★

마이클 비스핑이 은퇴한 지금 옥타곤에서 경기수로 세우는 기록은 도널드 세로니에 비견할 사람이 없다. 2011년 UFC 데뷔 이래 세로니는 2012년을 제외하곤 매년 3~4경기는 꼬박꼬박 개근하며 누구보다 방대한 커리어를 만들어나갔다. 단독 통산 최다승의 고지를 앞두고 지난 해부터 급격히 부진하긴 했지만 '클래스'가 어디 가겠는가. 결국 이날 세로니는 옛 동료 마이크 페리를 1라운드 암바로 제압하며 옥타곤 최다승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함은 물론 최다 피니시승 기록까지 갱신했다.

경기 내용은 참 세로니다웠다. 이번에도 그는 슬로우 스타터답게 초반 고전하는 듯 싶다가 기가 막힌 테크닉으로 한 방에 뒤집어버렸다. 의외로 테이크다운 전략을 들고 나온 페리에게 곧바로 상위포지션을 내줬지만 이내 트라이앵글초크 그립에 이은 리버스 암바로 역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경기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세로니의 킬러본능과 타격가 이미지에 가려진 서브미션 장인으로서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통쾌한 승리였다.(참고로 세로니는 통산 서브미션 승이 무려 17번으로 9번인 KO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최근 '최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옥타곤에서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마이클 비스핑은 은퇴했고, 프랭크 미어는 벨라토르로 떠났다. 조르주 생 피에르는 계속 간만 보고 있고 앤더슨 실바는 약물 파동 이후 경기력도 출장 횟수도 시원찮다. 그 와중에 여전히 랭커로서 경쟁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세로니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당연히 기록을 세울 만큼 오래 싸웠으면 물러나는게 순리지만, 팬으로서 베테랑이 조금은 더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3경기 : #5 저메인 드 란다미 vs #4 라켈 페닝턴

"UFC 챔피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 그래서 사이보그랑은 언제?
평점 : ★★☆

UFC 역사상 가장 존재감이 희박한 챔피언을 꼽으라면 초대 여성 페더급 타이틀의 주인 저메인 드 란다미를 빼놓기 어렵다. 여성 페더급은 설립부터 크리스 사이보그의, 크리스 사이보그를 위한, 크리스 사이보그에 의한 체급이었다. 하지만 드 란다미는 사이보그가 계약문제로 넘어오지 못하는 사이 빈집을 털어버렸고, 사이보그가 우여곡절 끝에 옥타곤에 입성하자 시종일관 그와의 대진을 거부하다 결국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본인 스스로가 호랑이가 없어서 왕노릇 했던 여우 포지션을 자처한 셈이다.

하지만 여성 밴텀급으로 돌아온 이번 UFN에서 그는 경기력으로 '그래도 챔피언은 아무나 해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방금 타이틀전을 치르고 내려온 라켈 페닝턴을 완벽하게 압도하며 다시 한 번 대권을 노려볼 위치로 치고 올라갔다. 선수층 공백이 컸던 페더급과 달리 밴텀급은 선수 수급이 원활한 편이고, 챔피언 자리에 자신을 이미 1라운드 KO로 잡았던 아만다 누네스가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벨트를 다시 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결코 그 '아랫물'에서 놀 레벨은 아님은 이번 경기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연말에는 여성 페더급-밴텀급의 절대 강자 사이보그와 누네스의 슈퍼파이트가 예정돼있다. 경기가 끝나면 결과와 무관하게 드 란다미는 두 선수 중 한 명과는 만나야 한다. 다시 페더급으로 돌아가든 밴텀급에 남든 피하려고 했던 벽에 부딪혀야 하는 셈이다. 그는 과연 입식에서 여러 벨트를 안겨준 킥복싱 스킬을 UFC 타이틀전에서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2경기 : 베네일 다리우쉬 vs 티아고 모이세스

"이기고 싶었던 다리우쉬, 이기긴 한 다리우쉬"
- 어, 굿잡
평점 : ★★

한때 베네일 다리우쉬가 신성으로 꼽히던 때도 있었다. 2015년 대런 크룩생크, 짐 밀러, 마이클 존슨을 연파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대성하리라 예상한 사람도 꽤 많았다. 그러나 마이클 키에사에게 한 번 미끄러진 이후 그는 '보통 파이터'로 전락했다. 2016년부터 그의 전적은 2승 1무 3패. 퇴출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지고 싶은 선수는 없다지만 다리우쉬는 더더욱이나 1승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이해는 됐다. 다리우쉬는 절대 위험부담 안 하는 안정지향 레슬링 운영, 이른바 '개비기'로 일관했다. 이에 옥타곤 새내기 티아고 모이세스는 어쩔 줄 몰라하며 하위에서 허우적대다 자멸했다. 정말 궁한 터줏대감이 꾸역꾸역 신입생을 잡아먹는 전형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하지는 않았다. 30-25가 나올만큼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경기를 끝낼 그림은 아예 만들지 못했다. 아무리 안전제일이었다 한들 이 정도면 그가 지금까지 부진한 이유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실력이 그 정도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리우쉬를 옥타곤에서 좀 더 볼 수 있게 됐다는 이상의 의미는 찾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오프닝 매치 : 메이시 바버 vs 하나 사이퍼스

"그래, 최연소 챔피언 해보자!"
- 간만에 등장한 신선한 젊은 피
평점 : ★★★

누누이 말하지만 여성부 경기가 인기 없는 이유는 화끈한 한 방도 기가 막힌 테크닉도 없는, e스포츠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 '혐영(혐오스럽게 지루한 운영경기)'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선수층도 얇아서 경쟁도 느슨한 편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나마 스트로급에서는 로즈 나마유나스와 요안나 예드제칙이 멱살잡고 체급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 그리고 여기에 좀 더 재미를 더해줄 젊은 피가 등장했다. 98년생 메이시 바버가 그 주인공이다.

객관적으로 바버가 지금 당장 대권 경쟁에 투입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바버는 이날 치른 옥타곤 데뷔전에서 탄력 있으면서도 유연한 움직임, 한 번 분위기를 잡으면 끝내려고 달려드는 공격성으로 자기 가능성을 입증했다. 특히 엘보로 컷을 낸 직후 상대가 움츠러들자 기세를 몰아 KO까지 몰고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기존 여성 디비전에서 보기 힘든 사냥꾼 기질도 엿보였다. 아직 단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최연소 UFC 챔피언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가 마냥 허세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총평

"이게 25주년?"
- 유일하게 빛났던 세로니의 원맨쇼
평점 : ★★

아쉬웠다. 2프로가 아니라 20프로는 아쉬웠다. 세로니의 원맨쇼를 제외하면 대부분 너무나 갑갑하게 흘러갔고, 그나마 바버의 활약과 로드리게즈의 버저비터 엘보만이 심심함을 달랬다. 그나마도 그렇게까지 박진감 넘치지는 않았다. 무료대회임에도 25주년 이벤트라고 공들인 주최측의 성의가 무색케할 만큼 UFN 139는 별로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는 평범 이하의 대회가 돼버렸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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