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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32] 리뷰 : 디스토피아 U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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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32] 리뷰 : 디스토피아 UFC
  • 유 하람
  • 승인 2019.01.02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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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32 포스터

[랭크5=유하람 기자] 악당이 음주운전을 하고, 임산부가 탄 차를 뺑소니로 치고 가고, 경찰에게 욕을 퍼부었다. 또 마약을 하고, 상대 눈을 찌르고, 경기력 향상 약물이 적발된 뒤 또 복용하고, 징계를 편법으로 빠져나갔다. 최고권력조차 처벌은 커녕 그를 오히려 양지로 끌어올렸다. 악당을 처단하려 등장한 히어로마저 압도적인 힘 앞에 무릎꿇었다. 어디 디스토피아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다. 지난 12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더 포럼에서 열린 UFC 232에서 실제로 기록된 현실이다. 연달은 업셋으로 청춘 스포츠 드라마가 되는 듯했던 UFC 232는 암울한 결말으로 막을 내렸다.

[라이트헤비급] #1 존 존스 vs #2 알렉산더 구스타프손

"정의구현 실패"
- 환영할 가치가 없는 복귀
평점 : ☆

한없이 악하고 한없이 뻔뻔하지만 한없이 강하다. 영화 캐릭터 설정 같지만 ‘악당’ 존 존스(31, 미국)에게는 현실이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타이틀을 두 번 박탈당했지만 결국 또 정상에 올랐다. 마지막 대항마로 꼽히던 동갑내기 라이벌 알렉산더 구스타프손(31, 스웨덴)마저 3라운드 파운딩 TKO로 제압하면서.

초반은 구스타프손이 나쁘지 않았다. 테이크다운과 클린치 시도를 모두 쉽게 막아냈고, 타격전에서도 대등한 싸움을 펼쳤다. 1차전처럼 확실히 앞서지는 않아도 싸워볼만 했다. 그러나 초반 킥을 차다 다리에 부상이 생긴듯 움직임이 줄기 시작했고, 상대를 충분히 파악한 존스는 3라운드 자신감있게 치고 나왔다. 존스는 레프트 훅으로 구스타프손 안면을 훑은 뒤 더블레그로 첫 테이크다운을 따냈다. 사이드를 잡은 존스는 크루시픽스를 노리다 백으로 넘어갔고, 파운딩으로 손쉽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압승이었다.

경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박진감 넘치지는 않았지만 구스타프손 같은 정상급 파이터를 상대로 천천히 감각을 끌어올리다 몸이 풀리는 순간 제압해버리는 모습은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선수라 부르기도 민망한 악당이 의문스러운 방법으로 빠르게 복귀해 챔피언벨트를 더럽히는 장면에 박수를 쳐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종합격투기에 정의가 살아있는가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여성 페더급] C 크리스 사이보그 vs WBW C 아만다 누네스

"방심이 화를 부르다"
- 여성부 역대 최고에 가까워지는 누네스
평점 : ★★★★☆

한편 메인이벤트를 제외한 메인카드는 하나 같이 업셋의 연속이었다. 특히 준 메인이벤트에서는 '여성 최강', '35억 분의 1'이라 불리던 페더급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33, 브라질)가 단 51초 만에 실신하며 충격을 안겼다. 밴텀급 챔피언 아만다 누네스(30, 브라질)는 무리해서 전진하는 사이보그에게 4번 연속 똑같은 라이트 훅으로 다운을 따낸 끝에 승리했다.

사실 경기 내적으로 본다면 사이보그가 평소 같지 않았다. 무에타이 룰에서 무에타이 챔피언을 잡을 정도로 타격에는 도가 튼 사이보그였기에, 이번 경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누네스 정도 되는 파이터에게 가드도 없이 달려든 이유는 무엇이며, 큰 펀치를 맞고도 가드를 올리지 않고 전진하다 같은 패턴으로 쓰러니는 이유는 또 무엇이던가. 방심했다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네스의 승리에는 태클을 걸 수 없다. 누네스는 사이보그의 이름값에 짓눌릴 수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최고의 판단을 했다. 사이보그가 걸어들어오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뭇 파이터와 달리 누네스는 빈틈을 찾아 정면으로 부딪혔다. 눈 앞에 챔피언벨트가 아른거려 흥분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사이보그의 턱을 집요하게 노렸고, 끝내 KO를 따냈다.

두둑한 배짱과 집중력으로 승리한 누네스는 두 가지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다. 첫째로는 여성 최초 두 체급 동시 정복이었다. 둘째로는 기존 여성부 최강으로 불리던 론다 로우지와 크리스 사이보그를 잡아내는 데 불과 99초를 기록했다. 진정 여성부 역대 최강/최고를 가릴 때 누네스의 이름을 빼놓기는 어렵게 됐다.

[웰터급] 카를로스 콘딧 vs LW #9 마이클 키에사

"이빨 빠진 킬러"
- 콘딧, 6년 간 2승 8패 달성
평점 : ★★☆

전성기 지난 선수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느 순간 훅 꺾인 선수라면 아쉬움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카를로스 콘딧도 그 중 하나다.

2012년 닉 디아즈를 잡고 웰터급 잠정 챔피언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콘딧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 콘딧은 스물 여섯에 전적은 28승 5패, 피니시율이 90%가 넘어갔다. 실력이면 실력, 결정력이면 결정력, 카리스마면 카리스마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그는 레슬링과 초반 운영이라는 약점을 혈투와 역전승으로 승화하는 마술사였다.

하지만 타이틀전에서 조르주 생피에르에게 패한 뒤 콘딧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후 전적이 이번 경기까지 무려 2승 8패. 10년 동안 당한 적 없는 서브미션 패와 KO패까지 추가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미끄러졌다. 라이트급 출신 마이클 키에사(31, 미국)는 그에게 5연패를 안겨주며 하락세에 쐐기를 박았다. 콘딧은 하위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최근 패턴을 반복하며 3년 8개월 째 전패를 기록했다. 이젠 떠나보낼 때가 됐다 싶으면서도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는 결과였다.

[라이트헤비급] #5 일리르 라티피 vs #10 코리 앤더슨

"앤더슨, 이제는 빛 볼 때"
- 존스는 글쎄
평점 : ★★☆

스웨덴 대회에서 구스타프손 대체선수로 들어온 이래, 일리르 라티피(35, 스웨덴)는 예상 외로 체급 정상권에서 오래 활약했다. 라이언 베이더의 니킥에 대자로 뻗는 굴욕도 있었지만 연패 없이 꾸준히 승수를 쌓으며 랭킹 5위까지 올라섰다. 기대치가 적었기에 오히려 이길 때마다 주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옥타곤에 입성한 코리 앤더슨(29, 미국)은 뭔가 보여주려고 할 때마다 임팩트 있게 무너지며 문지기 취급을 받았다.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라운드 막판마다 다운당하며 판정패한 경기가 그랬고, 지미 마누와-OSP 콤비에게 연달아 실신패할 때가 그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적은 앤더슨이 라티피보다 더 많고 좋지만 랭킹은 다섯 단계나 낮은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초반에는 라티피가 랭킹 차이를 보여주는 듯한 기량을 선보였다. 힘도 움직임도 좋은 라티피는 붙어서는 중심을 흔들고 떨어질 때 훅을 맞추며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러나 2라운드부터는 앤더슨이 압도적인 카디오를 앞세워 높은 페이스로 압박했고, 라티피는 이에 말려들며 체력이 빠르게 소진됐다. 결국 라티피는 2, 3라운드를 내리 내주며 만장일치 29-28로 패했다.

확실히 앤더슨은 운영 경기에서는 강하다는 점을 다시 입증했다. 그가 자신하는 대로 체급에 돌아온 악당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켜는 볼 만할 듯하다.

[페더급] #5 채드 멘데스 vs #10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3년이면 한 세대"
- 멘데스, 물갈이 당하다
평점 : ★★★☆

2015년 이후 멘데스는 타격 방어와 체력이 상당히 불안해졌다. 약물 적발 후 3년 가까이 공백이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승률이 4할까지 떨어지고 패하는 족족 KO로 무너지는 등 확실한 기량저하를 보였다. 이번 패배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체격부터 스타일까지 모두 비슷한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0, 호주)에게 멘데스는 7분을 유리하게 싸우고도 막판에 몰리며 장렬히 쓰러졌다.

승부처는 2라운드였다. 1라운드에는 북미 레슬라이커 특유의 밀면서 던지는 뒷손 훅 싸움이 이어졌다. 짧은 거리에서의 타격전에서는 킥을 섞어주는 볼카노프스키가 앞서나갔으나, 라운드 종료 40여 초 전 멘데스가 하단태클을 한 차례 성공하며 점수를 땄다. 2라운드에도 카운터를 노리던 멘데스는 원하는 만큼 상대가 들어오지 않자 갑갑해진 듯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었고, 드디어 라이트 오버핸드를 적중시키며 주도권을 가져왔다. 그러나 한 타이밍을 버틴 후엔 볼카노프스키의 분위기였다. 힘을 너무 많이 쓴 멘데스는 곧바로 페이스가 급격히 낮아졌고, 볼카노프스키는 태클을 두 차례 허용하고도 묵직한 펀치로 몰아친 끝에 바디샷으로 TKO를 따냈다.

이 경기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어찌 됐든 멘데스는 3살이라도 어리고 늦게 데뷔한 이미테이션에게 물갈이 당했다는 것. 한때 논타이틀전 무패였던 멘데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총평

"디스토피아 UFC"
- 환상적인 전개, 최악의 마무리
평점 : ★

분명히 좋은 대회였다. 세계 최대 메이저 단체의 연말대회답게 대진부터 내용까지 화려하고 화끈했다. 무엇보다 전 경기에서 업셋이 터졌다는 점에서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끝이 좋아야 다 좋다고 한다. 세계 종합격투기의 연말결산 격인 이 대회에서도 가장 스포트라이트 받는 자리에서 선수이길 포기한 악당이 승리한다는 건 결코 웃을 수 없는 결말이다. 아무리 '진짜 선수들'이 분투해도 악당이 승리하고 권력조차 그 악당편인, 디스토피아 UFC는 결국 완성됐다.

유하람 기자 rank5yhr@gmail.com

UFC 232 메인카드
– 2018년 12월 3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더 포럼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전] 존 존스 vs 알렉산더 구스타프손
– 존 존스 3라운드 2분 2초 KO승(펀치)

[여성 페더급 타이틀전] 크리스 사이보그 vs 아만다 누네스
– 아만다 누네스 1라운드 51초 KO승(펀치)

[웰터급] 카를로스 콘딧 vs 마이클 키에사
– 마이클 키에사 2라운드 56초 서브미션 승(기무라)

[라이트헤비급] 코리 앤더슨 vs 일리르 라티피
– 코리 앤더슨 3라운드 종료 만장일치 판정승(3-0)

[페더급] 채드 멘데스 vs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2라운드 4분 14초 TKO승(바디샷)

UFC 232 언더카드
– 2018년 12월 3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더 포럼

[헤비급] 안드레이 알롭스키 vs 월트 해리스
– 월트 해리스 3라운드 종료 스플릿 판정승(2-1)

[여성 페더급] 캣 진가노 vs 메간 앤더슨
– 메간 앤더슨 1라운드 1분 1초 TKO승(펀치)

[밴텀급] 더글라스 실바 데 안드라데 vs 페트르 얀
– 페트르 얀 2라운드 종료 TKO(리타이어)

[라이트급] 라이언 홀 vs BJ펜
– 라이언 홀 1라운드 2분 46초 서브미션 승(힐훅)

[밴텀급] 나다니엘 우드 vs 안드레 에웰
– 나다니엘 우드 3라운드 4분 12초 서브미션 승(리어네이키드초크)

[미들급] 유라이아 홀 vs 베본 루이스
– 유라이아 홀 3라운드 1분 32초 KO승(펀치)

[웰터급] 커티스 밀렌더 vs 시야르 바하두르자다
– 커티스 밀렌더 3라운드 종료 만장일치 판정승(3-0)

[밴텀급] 몬텔 잭슨 vs 브라이언 켈러허
– 몬텔 잭슨 1라운드 1분 40초 서브미션 승(다스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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