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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223] 리뷰 : 엎어진 밥상, 선수들이 주워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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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223] 리뷰 : 엎어진 밥상, 선수들이 주워 담다
  • 유 하람
  • 승인 2018.04.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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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23

[랭크5=유하람 기자] 2011년 선수 보험 도입, 2015년 USADA 약물검사 전담 결정 이후 UFC는 시도 때도 없는 대진붕괴로 골머리를 썩였다. 예전처럼 몸이 아파도 참고 경기를 뛸 필요성도 적어져 늘어난 부상이탈은 물론, 약물적발로 아예 출전자격이 정지되는 일까지 속출했기 때문이다. 메인카드에 헤비급만 세우며 야심차게 추진한 UFC 146은 대회 하나가 약물적발과 부상이탈 콤비네이션으로 초토화된 대표 사례다.

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열린 UFC 223은 그 아성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저주 받은 대회라기엔 손색이 없었다. 메인이벤트 비중이 큰 대회에서 개최 일주일 사이에 선수가 두 번 교체됐다. 도중 주체육위원회가 허가하지 않아 출전 무산된 선수까지 포함 하면 세 번이다. 일단 김이 샐 대로 새고 시작한 UFC 223, 과연 결과물은 어땠을까.

1경기 : 조 로존 vs 크리스 그루츠마커

“로존, 아 로존”

-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

올드팬이라면 조 로존을 모르기 어렵다. 비록 챔피언감은 아니었지만 그의 좀비 같은 맷집과 투혼, 역전을 끌어내는 서브미션 능력은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곤 했다. 파이트 오브 나이트 등 명경기 보너스만 13차례 받았으며, 이 금액만 60만 달러에 이르니 그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맷집‧투혼‧역전 같은 수식어는 사실 선수생명을 잔뜩 깎아먹는 스타일이란 뜻이기도 하다. 누가 ‘매에는 장사 없다’고 했던가. 로존은 최근 몸이 따라주지 않아 무력하게 지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다. 많이 맞는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몸에 쌓인 데미지 때문에 모든 신체능력이 저하된 듯 한 모습이다.

이번 경기도 다르지 않았다. 1라운드 초반에는 상대를 몰아붙이며 예전 가락을 보여주는가 싶었다. 그러나 2분 정도 지나자 로존은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단순히 체력 문제가 아니라 주먹을 내지도 못할 만큼 몸이 머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2라운드 종료까지 어떻게 끌고 가긴 했지만 이는 ‘투혼’이라기보다 ‘근성’에 가까운 버티기였다. 결국 보다 못한 심판이 경기를 종료했다.

냉정히 말해 이 경기에 대한 감상은 ‘로존은 은퇴해야’ 이상이 되기 어렵다. 상대 그루츠마커를 칭찬하기엔 이미 빈사상태였던 로존을 끝내지 못해 쩔쩔 맸다. 세대교체라 포장하기에도 그루츠마커 역시 젊은 선수가 아닐뿐더러 UFC 입성 후 연패를 간신히 끊은 입장이다. 옛날 사람이 몰락하는 과정을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한, 여러 모로 씁쓸하기만 한 싸움이었다.

2경기 :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 vs 카일 보크니악

“디에고 산체스의 재림”

- 예견된 결과, 의외의 내용

사전에 진행된 대회결과 예상 투표에서 국내 격투전문기자들은 만장일치로 자빗 손을 들어줬다. 전적만 보더라도 이는 연승 중인 신예를 키우기 위한 ‘떡밥 매치’에 가까웠다. 실제로 자빗은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화려한 타격으로 낙승을 거뒀다. 그런데 내용물이 의외였다. 언더독인 카일이 분전하며 생각지도 못한 명경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는 시종일관 자빕이 앞서나갔다. 안정된 중심과 기다란 팔다리, 날카로운 거리감을 바탕으로 본능적인 타격을 날리는 자빕은 전성기 게가드 무사시를 연상케 했다. 너무 무난한 승부가 되나 싶은 순간 관중을 열광시킨 건 카일이었다. 카일은 짧고 작은 신체조건에도 터프하게 자빕을 몰아붙였다.

작은 선수가 수 없이 안면을 내주면서도 괴성을 지르며 맹렬히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디에고 산체스 같았다. 체력 안배하며 안정적으로 이기려던 자빕이 진흙탕 싸움에 지쳐 오히려 페이스를 잃을 정도였다. 특히 3라운드 종료 직전 가드를 완전히 내리고 소리 지르며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이 대회의 백미였다. 디에고 산체스처럼 용맹한 만큼 디에고 산체스처럼 결정력이 없어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라운드가 지날수록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카일에게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결국 파이트 오브더 나이트는 이 경기에 돌아갔다. 매치메이커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니었겠지만, 뭐 어떤가. 이러나저러나 자빗은 체력이라는 숙제만 확인했을 뿐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패자인 카일도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경기 화끈하게 불태우며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겼다.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격투기에서 모두가 윈윈하다니, 어딘가 훈훈하지 않은가.

3경기 : 헤나토 모이카노 vs 캘빈 케이터

“올라갈 선수는 올라간다”

- 자리를 찾아가는 1류 타격가

모이카노는 웰터급 평균에 가까운 기다란 신장과 다양한 타격 옵션으로 주목 받은 신성이다. 의외로 KO승 경험이 없고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실력은 확실한 선수기도 하다. 다만 지난 경기에서 다 이긴 경기를 브라이언 오르테가의 서브미션 한 방에 내주며 타이틀까지는 빙 돌아서 가게 됐다.

오늘 보여준 경기력은 ‘역시 모이카노’라는 말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상대를 ‘박살내는’ 무언가는 없지만, 모이카노는 종합격투기 타격전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바탕으로 약점을 공략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길고 무지막지하게 빠르지만 단조로운 복싱 패턴으로 일관하는 케이터를 그는 레그킥과 스위칭, 서클링으로 요리했다.

타격전치고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모이카노는 자신이 챔피언을 노리고 달려볼만한 선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페더급에서도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지금, 모이카노가 기회를 잡는 시나리오는 결코 허상이 아니다.

준 메인이벤트 : 로즈 나마유나스 vs 요안나 옌드레이칙

“여성 종합격투기의 새로운 서막”

- 여성 스트로급을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려놓다

격투기는 자연스럽게 수준이 올라가기보단 몇몇 선구자가 등장하면 그에 따라 상향평준화되는 과정을 통해 발전했다. ‘프라이드 헤비급 트로이카’로 불리던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미르코 크로캅이 좋은 예다. 이종격투기 수준에 머무르던 여성 종합격투기에도 이런 선구자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요안나 옌드레이칙이었다.

옌드레이칙은 링 아나운서도 헷갈리는 이름만큼이나 따라 하기 어려운 스타일을 구사했다. 완벽에 가까운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바탕으로 그는 5라운드 내내 쉬지 않고 스텝을 밟으며 빠른 템포로 타격을 쏟아낸다. 상대는 체력전과 속도전을 동시에 강요받으며, 보통 3라운드쯤 되면 얼굴에 피칠갑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번 ‘나마유나스 vs 옌드레이칙 2’는 이 막강한 독재자가 나타난 뒤로 여성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선수는 남성부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정교한 타격전을 25분 내내 펼쳤다. 불과 2년 전까지 ‘무다무다 펀치’로 상위체급을 지배하던 론다 로우지를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더욱 고무적인 점은 승자 나마유나스가 옌드레이칙이 챔피언에 오를 무렵 ‘팻 베리 여자친구’ 정도로 이름을 알리며 UFC에 들어온 지극히 평범한 선수였다는 사실이다. 옌드레이칙이라는 선구자가 등장하자 나마유나스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11월에 한참 앞서나가던 챔피언을 3분 만에 때려눕힌 데 이어 이번에는 완봉승을 거두며 이젠 선배를 추월해버리기까지 했다. 두 선수가 끌어올린 체급의 수준과 미래에 대해 박수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메인이벤트 :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알 아이아퀸타

“‘하빕’이 그저 ‘하빕’했을 뿐”

- 드디어 자릴 찾은 라이트급 타이틀

종합격투기 역사상 최악의 탕아 코너 맥그리거는 경량급 생태계를 완전히 헤집어 놨다. 전례 없는 특혜로 두 체급 동시 석권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지만, 그는 두 벨트를 나란히 들고 복싱으로 날아갔다. 페더급과 라이트급은 한동안 챔피언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상태로 방치돼야만 했다. 그나마 타이틀 박탈이 빨랐던 페더급은 전 챔피언 알도와 현 챔피언 맥스 할러웨이가 빠르게 공백을 메웠지만, 라이트급은 최근까지도 무정부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라이트급 벨트를 차지한 건 다름 아닌 ‘무패신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였다. 타이틀전은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구색이 무색하리만치 일방적이었다. 하빕은 언제나 그랬듯 레슬링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후반엔 타격에서도 우위를 점하며 압승을 거뒀다. 애초에 잠정챔피언 토니 퍼거슨도 하빕 상대로는 언더독이었던 마당에, 아이아퀸타가 적수가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굉장히 하빕다운 결말이었다.

이 많고 마무리는 다소 김새는 감이 있었지만 결국 하빕의 시대는 오고 말았다. 하빕은 이로서 러시아 최초의 UFC 챔피언, 안드레이 알롭스키 이후 13년 만에 나온 동유럽 출신 UFC 챔피언, 라이트급 최초 무패 챔피언 등 여러 기록을 달성했다. ‘맥그리거 강점기’를 벗어난 첫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꽤나 멋드러진 출발이 된 듯하다.

총평

“엎어진 밥상, 선수들이 주워 담다”

UFC223은 메인이벤트에서 벌어진 대참사에도 선수들의 분전으로 썩 괜찮은 대회였다. 카일이 대활약하며 분위기를 달궜고, 나마유나스‧옌드레이칙‧하빕은 팬들이 기대한 퍼포먼스를 그대로 선보였다. 체급 질서를 제대로 정리했다는 의의도 있었으며, 메디슨 스퀘어 가든 역대 입장수익 1위를 기록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흥행도 실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로존이 너무 무력하게 무너졌다든가, 메인이벤트가 하빕 원맨쇼가 됐다든가 하는 예상 가능했던 아쉬움은 분명 있었다. 부상이탈로 인한 대진 변경이라는 예방 불가능한 재앙에 최선을 다해 대응했지만 한계는 뚜렷했다. 무엇보다 타이틀매치에서 대체출전이라는 그림 자체가 별로인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망할 뻔한 대회를 이 정도 살려놓은 선수들에게 박수 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듯하다.

유하람 기자 droct8969@naver.com

■ UFC 223 결과

[라이트급 타이틀전]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알 아이아퀸타
하빕, 5라운드 종료 판정승(3-0)

[여성 스트로급 타이틀전] 로즈 나마유나스 vs 요안나 옌드레이칙
로즈, 5라운드 종료 판정승(3-0)

[페더급] 헤나토 모이카노 vs 캘빈 케이터
헤나토,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페더급]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 vs 카일 보크니악
자빗, 3라운드 종료 판정승(3-0)

[라이트급] 조 로존 vs 크리스 그루츠마커
크리스, 2라운드 종료 TKO승(레프리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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